행복감이 생생하던 시간들이 있다.
그 중 하나로 나는 유학 시절 도서관에서 하염없이 책을 뒤지며 보냈던 시간을 꼽는다.
MIT 도시건축학부에는 로치 라이브러리(The Rotch Library)라는 전문 도서관이 있다. 2층, 500여 평 규모다. (아래 사진 둘. 위는 지하층의 공동공간, 아래는 증축한 부분을 밖에서 찍은 사진, 자료출처: MIT. MIT에는 5개의 school-학부가 있는데, 그 중 도시건축school은 작은 편. 따라서 도서관도 작다. 상대적으로 돈도 적은 학부라서 홀대를 받는 편? 이 작은 증축 리노베이션 할 때 디자인 컴페를 해서 안을 골랐다. )
이 위축감에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 나는 상당한 시간투자를 했다. 가장 좋은 방법은 ‘지식의 시스템’을 아는 것이었다. 모듈 코스(module course, 6주 정도의 짧은 강좌)중의 하나였던 ‘도서 분류 워크셥’을 일부러 들어보기도 했다.
어떻게 그 많은 책들이 ‘지식’이라는 나무를 형성하는지, 위로 아래로 자라면서 나무의 뿌리, 줄기, 가지, 이파리, 열매가 되는지 알게 되었다. 맥을 알고 나니 그제야 맘 편해졌다. 역시 큰 맥을 짚을 수 있으면 안심이 된다.
그러나 맥을 짚는 것과 내용을 짚는 것은 다르다. 그래서 책은 봐야한다. 그리고 되도록 자유롭게 보는 것이 좋다. 내가 로치 라이브러리에서 특히 행복했던 시간은 매학기 끝난 직후 십여 일간이다. 학기 중에는 수강 필수 독서량이 적지 않고 또 숙제하기 위한 ‘목적성’ 독서가 만만치 않아서 자유 독서를 하기는 아무래도 어렵다. 그런데 마지막 시험 또는 리포트를 낸 직후부터 방학 중 일이 시작되기 전 십여 일 사이의 시간은 완전히 자유 독서가 가능한 시간이다. 어떤 책도 내 맘대로 볼 수 있다.
도서관 수준이 취약한 우리 사회에서는 이런 맛을 보기 어렵다. 예전보다 나아졌지만 우리의 경제 발전과 지적 수준의 발전에는 턱없이 못 미친다. 물론 요새는 대형서점들이 있어서 서점만 돌아봐도 세상에 어떤 지식들이 있는지 알 수 있을 정도로 인벤토리가 풍부해졌다. 그러나 서점은 주로 신간 위주이니 열매와 꽃만 잔뜩 열린 식이어서 뿌리와 줄기를 알기 어렵다는데 문제가 있다. 책이란 체계를 잡는데 도움이 되지 않으면 없느니만 못하기 때문이다. 지식의 체계를 잡는 것, 이것이 책을 읽는 나의 기본자세다.
책은 보고다. 영원한 보고다.
아무리 인터넷과 데이터베이스 부문이 발달되더라도 책은 ‘지적 리더십’의 역할을 잃지 않을 것이다. 지적 창조의 대상이자 수단이라는 의미에서 보면 더욱 그렇다. 비록 많은 자리를 다른 커뮤니케이션 매체들과 공유하겠지만 ‘지적 리더십’은 책에서부터 시작할 것이다. ‘정보 제공’이라는 의미에서의 책의 기능은 줄어도 ‘지식 생산’ 또는 ‘지혜 생산’이라는 의미에서의 책의 기능은 오히려 커지리라는 것이 나의 판단이다.
이것은 책이라는 ‘종이’ 세계와 이미지로 이루어지는 ‘모니터’ 세계와의 본질적 차이 때문이기도 하다. 글자로 이루어진 책과 이미지로 이루어지는 모니터 세계와의 본질적 차이라면 총괄성과 단속성, 체계성과 즉시성, 추론적 사고와 단정적 사고, 능동성과 수동성 등의 대비적 성격을 들 수 있다. 그만큼 책이란 독자의 통합적, 체계적, 논리적, 능동적인 능력을 요구하고 또한 키워준다.
어떻게 책과 함께 자랄 것인가?
책 읽기보다 더 쉽고 자극적인 유혹이 사방에 깔려있는 상황에서
어떻게 책에 매력을 느낄 수 있을까?
어떻게 책과 친구가 될 수 있을까?
ⓒ 김진애 - 매일매일 자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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